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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gerousUncle

<은하철도 999>와 코로나 19


요즘 갑자기 생각나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마츠모토 레이지 작의 <은하철도 999>.

어릴적 아침마다 졸린 눈 비비며 항상 본방 사수하던 이 만화를 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빛나는 메텔로 인해 생겨버린 이성관과 어린 나이에 생각하기에 금방 다가올것만 같은 세기말에 대해 무한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 난 진짜 1999년에 무슨 일 하나는 일어날 줄 알았고, 1999년에 내 결혼식에 식장이 무너지는 꿈을 반복적으로 꾸었을 정도이다. )


애니를 보며 한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왜 굳이 기계의 몸을 가지러 저 고생을 사서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애니의 종편 즈음에 학습과 노동에서 벗어나 영원히 편히 놀 수 있다는 기계인간의 말에 피식 웃으며 저런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다소 인간다운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애니가 주간으로 방영했고 지금 의 '넷플릭스'처럼 전회 연속 관람의 길이 전혀 없었기에, 그 긴 방영 기간동안 성장 해버린 나의 작은 어른스러움이 애니의 마지막 결론에 싱거움 마저 느끼게 했을 것이다.


몇 년 전 부터 유독 황사가 심하게, 그것도 주기적으로 올 때 마다 은하철도 999 의 시작 즈음에 철이의 엄마와 모래 폭풍을 헤매던 철이의 모습이 현실에 오버랩 되곤 했다. 어릴 적 공포감에 대한 '데자뷰' 라고나 해야 할까? '나는 어른이야' 하며 황사에도 '마스크 따윈 필요 없어' 다니던 내가 요즘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팬데믹' 이란 단어를 처음 들어봤고, 이 상황이 정기적으로 전 세계에 익숙할 만큼의 세상이 온다면, 전신은 아니더라도 기계 기관지나 이식성 필터, 호흡기로 인간을 부분 기계화 하는 것이 소위 요즘 말하는 '플렉스' 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상상이 머리 속을 맴돈다.

너무나 빠른 시일에 인간 관계나 사회적 활동이 변화하고 하루 하루 뉴스가 우울증이 올만큼 진정의 기미가 안보이는 이때에,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현실 가능성도 있다는 암울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보니 사람들의 악함이 눈에 보여 안타깝다. 사재기와 그에 따른 폭리를 취하는 악빠른 자본가들과 마스크 하나 중복 수령하려고 새치기와 부정을 저지르는 소소한 인간성 상실과 확산 방지를 위한 규제를 정치적, 종교적으로 해석하고, 보기도 싫은데 뉴스라는 이름으로 생산하여 자꾸 눈 앞에 , 두 귀에 속삭이는, 할 일이 부정적으로 아주 많아진 사람들이 눈에 밟히다 못해 이 세상에 꽉꽉 들어찬 기분이다.

이런 이들이 자본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슴에 빛나는 이식 호흡기 달고 난 이제 괜찮다 마스크는 하찮은 것들이나 가져! 하지 않을까.


다행히 내 가까운 사람들은 마스크를 써도 내 보호보다 남을 위해 쓰며, 혹시 인지 못하는 감염과 전달로 남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 외출과 모임을 최대한 자제하는 사람들이다. 나 또한 그 영향을 받아 불가피한 만남이라면 최대한 위생에 신경쓰고 다니고 있고 또 그 뒤의 약속은 어느 정도의 내 관찰을 한 뒤에 잡고 있다. 이들은 또한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진 이 시기에 마스크 하나라도 나누며 이를 극복하려는 아이디어를 쉼없이 화상으로, 전화로 나눠준다. 참으로 나에겐 복된일이다.


대구로 달려갔고 오늘도 고생하는 의사 간호사 만큼의 희생정신까진 아니더라도 이런 작은 배려심이 나의 인간성을 치유하고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고 나 또한 그러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기계인간 플렉스가 현실로 느껴질 만큼의 지금이지만 나의 가족, 너의 가족이 아닌 우리 모두의 가족을 위해 배려하고 신경 쓸 시간인것 같다.


그리고 어서 이 시간이 빨리 지나 가족과, 이 친구들과 즐겁게 여행 계획이나 세우고 싶다.


반강제적 자가격리 작업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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